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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무능력자 맥시멈라이프/배움일기

둘이 산다

2020.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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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쯤에 책을 읽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책이었다. 트위터를 통해서 인연을 맺게된 두 사람이 만나 집을 구하고 고양이 네 마리와 함께 지내는 생활에 대한 이야기였다. 결혼은 하고 싶지 않고, 남친도 귀찮아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아보고 싶기는 했던 차에 이 책은 내 맘 속에 있던 소망을 현실화 한 사람들의 이야기 같았다. 그리고 그 때 마침 집도 옮길 때가 되었고, 그때 즈음에 본 운세에서도 집을 옮기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나왔다.

 

그래서 전세집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이 이유의 전부이진 않았다. 한 집에서 4년 쯤 살다보니 짐이 너무 많아졌고, 시골 마을 치고는 비싼 우리 동네에서 그나마 싼 집에 살고 있었지만, 해가 들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창문을 열 수 없어 집 안에 있으면 갑갑하기 그지 없었다. 가끔은 그런 것도 좋지만 무엇이든 그 상태가 계속 되면 질리기 마련이다. 또한 나는 쉽게 잘 질리는 성질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세를 찾는데, 부동산 아저씨가 '전세는 멸종'이라며 집을 사라고 할 뿐 전세 물건 자체가 없다고 하더라. 한 번씩 나오는 물건은 전화하는 족족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을 동분서주해도 마음에 드는 집, 전세는 구경도 못 했고 이렇게 집을 못 구할 바에는 생활의 질이라도 높여야겠다며 식기세척기를 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전에 연락했던 집 한 곳이 계약이 취소됐다며 전화가 왔다.

 

방 2개, 화장실 1개, 거실

 

햇빛이 가득한 집은 아니지만 거실 창문을 열어놔도 되는 막힌 것 없는 집. 여기다 싶어 이사를 했다. 물론 식기세척기도 샀다.

 

그러나 나는 거지였다. 전세 7천은 고스란히 대출이었고 월세 대신 이제 이자가 나갈 예정이었다. 물론, 그래도 이자가 월세보다야 쌌지만 여전히 부담이긴 하다. 그때 한창 같이 집을 봐주러 다니던 직장 동료가 있었는데, 오래되고 엘리베이터 없지만 방 세개에 엄청 넓은 집이 전세로 나왔을 때 같이 살자고 이야기 했었다. 그 집 아저씨가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무산될 뻔 했으나 그녀도 집세를 아끼고 싶고 나 역시 생활비도 아껴야 했다.

 

집과 가전기기는 내가 마련하고, 그녀가 생활비를 조금 더 부담하는 형태로의 동거 생활을 제안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고 같은 집에 살기 시작했다.

 

 

우리 둘의 주 생활 공간, 거실

 

물론 주변 사람들이 우려했듯이, 우리 둘 역시도 함께 산다는 것에 있어서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행 가서 남이 되어 온 친구도 많이 봤지만, 같이 살면 백퍼 원수 된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고 경험해 본 바 아무래도 마음이 온전히 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살기 이전에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간 날이 많았고, 일주일에 세네번 이상은 같이 저녁을 먹고 놀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녀와 함께 살아도 괜찮겠다고 느낀 것은 그녀와 나의 집이 거의 비슷하게 더러웠기 때문이었다. 😂

 

나의 동거인은 정말 무난하고 온순한 성품의 소유자로 항상 입버릇 처럼 말하듯이 '평화주의자'였다. 세상 신기한 것이 많고 호기심이 많으며 에너지가 넘친다. 생각도 많고, 술도 잘 마시고. 덕분에 내 맘대로 휘두르는 공간에서 대체로 동거인은 잘 적응해 나가고 있는 듯 하다. 이삿짐 정리하다보니 어느새 한달은 금새 지나갔고, 여행이니 집에 다녀오니 해서 겨울을 보내고 나니 벌써 3개월째 우리는 함께 지내고 있다. 

 

 

함께 살아보니 당연히 좋기도 하지만 단점이 없을리는 없다. 하지만 괜찮은 사람이 있고 생각이 맞다면 한 번쯤은 이렇게 같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는 대략 10개월 정도 남았다. 3개월 동안 우리는 제법 많은 와인을 마시고, 카메라를 샀고, 넷플릭스를 함께 봤고, 함께 블로그를 파고, 주식을 알아보다가 돈 없어 슬퍼하기도 했다. 아직까지 싸운 적은 없다. 아직도 한 번씩 서로 약간의 눈치를 보며 조정기간 중이다. 아마 이러다보면 10개월이 끝나지 않을까.

 

 

눈 오는 날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던 동거인

 

 

10개월 뒤에는 즐겁게 파티하면서 보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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