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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형떠돌이 어디라도좋아/대만

타이페이, 생애 첫 혼자 대만 여행 이야기 (2)

2020.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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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제시한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7.20. 단수이를 가서 담강중학교, 진리대학교를 보고 단수이에서 일몰을 보고 오는 길에 스린 야시장 다녀오기
7.21. 마오콩 곤돌라를 타고 한 번 본 후에, 중샤오 푸싱 역으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진과스를 갔다가 지우펀을 가기
7.22. 타이페이 시내 둘러보기
7.23. 정리하고 한국 귀국

 

지금 보니 그가 아니었다면, 마오콩 같은 데는 절대 가지 않았을 곳일 텐데, 그 덕분에 다녀왔으니 제법 좋았던 것 같다. 계획도 없고 생각도 없었던 나는 그가 제시한 대로 실행에 옮겼다.

 

숙소를 나오니 다시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대만 여행기를 몇 번만 검색해 봐도 알 수 있듯 대만은 대중교통 내에서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다만 들고 있는 건 괜찮고 마시는 것만 안 된다는 것 같더라. 여행 가면 이런 차이 하나하나가 다 신기하고 소소한 재미가 된다. 진짠가? 진짜네. 그래서 음료 테이크 아웃 주문하면 손잡이 달린 비닐봉지에 담아준다더니 진짜 그러더라.

 

 

여름 마당에 호수로 물을 뿌리는 것처럼 여기도 살수차 같은 것이 물을 뿌리면서 지나갔다.

 

 

단수이로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특히 빨간색 메트로를 타면 그냥 쭈욱 가면 된다. 종점인 단수淡水 역으로 가면 된다. 그러나 종종 베이터우 北投 까지만 가는 열차도 있으니 한 번에 가길 원한다면 주의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타서 베이터우에서 사람들 다 내리길래 신나서 앉았다가 뭔가 수상해 둘러보니 다시 타이페이 돌아가는 열차로 바뀌어 있어서 서둘러 내린 적이 몇 번 있다.

 

나의 숙소가 있던 리우장리에서 단수이 역시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에서 레드라인으로 갈아타고 마찬가지로 쭈욱 가면 된다. 단수이 방향으로.

 

그리고 생각보다는 긴 여정에 창밖을 내다보며 상념에 휩싸여있다 보면 강인 듯 바다인지 모를 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강 건너 마을이 보이며, 점점 나무와 자전거도로와 공원 앞에 자리한 단수이 역에 도착하게 된다. 역에 도착해서 내리면 한 무리의 택시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한 여름의 햇살과 노란 택시는 정말 뜨겁게 잘 어울린다. 나는 그런 택시를 왼쪽에 끼고 쭈욱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단수이 역은 제자리에서 한 바퀴 쭈욱 돌아보면 목적지에 따라 어느 방향으로 전진해야 할지 알 수 있다.

 

버스는 이쪽, 단수이 라오지에는 저쪽

 

 

어차피 버스타고 돌고 돌아 라오지에로 다시 올 거지만, 홍紅 32번 버스를 탄다. 그래도 타기 전에 무서워 주변에 물어는 봤다.

 

이거 홍마오청 갑니까?
紅毛城?

 

다른 나라에 가면 말이 짧아진다. 단어만 이야기하고, 사람이 더 직관적으로 된다. 그게 여행의 묘미 아닐까.

 

친절한 아주머니 한분이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버스가 오자마자 저거 타면 된다고 얼른 타라고 재촉한다. 얘 홍마 오청 간다고 아저씨한테 이야기도 해 준다. 이 버스에서 한국 사람이 나뿐인가 싶었는데 정말 나 혼자 뿐이었다. 대신 나처럼 여행자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홍마오청 도착하니 여기가 홍마오청이라고 아저씨가 방송을 한다. 제법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우르르 내렸다.

아직 해가 한창인 시간. 이럴 때를 대비해서 가져온 우산을 펼쳤다. 그때는 아직 양산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생각할 때 였기때문에, 비가 올 것에 대비해서 하나 가져왔었다. 그런데 우산이 정말 귀하게 쓰였다. 물론 우산 말고 양산으로. 그늘 하나가 주는 행복을 그제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홍마오청은 영국의 무역기지 같은 역할을 하던 곳으로 대사가 지내던 곳이라고 했던 것 같다. 여기도 다섯 번쯤 갔는데 원래 관심 없는 건 정말 대충 지나치는 사람이라서 설명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다섯 번 중에 날씨는 이 날이 정말 최고였다. 생각해 보면 대만을 간 6번 중에 날씨는 7월이 최고였던 것 같다. 오래된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인데도 여전히 쨍한 그날의 날씨가 뚫고 나올 듯 느껴지는 걸 보면 말이다.

 

다시 홍마오청을 나와 우산을 쓰고 옆 길로 걸어 걸어 진리 대학을 지나쳐 담강 중학교로 향했다. 사실 여행을 갈 때까지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크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은 달라졌냐 하면 지금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고는 피아노 대결 장면과 마지막 시간을 돌리기 위해 소용돌이와 함께 피아노를 치는 주걸륜 정도가 기억에 남을 뿐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주걸륜周杰倫을 좋아했었다.

담강중학교 교정에서 찍은 사진, 지금은 외부인 출입이 안 되는 것 같아 그 이후로는 들어가보질 못했다

 

주걸륜 周杰倫. 다른 언어로 노래하는 게 좋아 일본 음악도 들었고, 중국노래도 듣고, 팝도 좋아했고, 정말 하나도 못 알아듣는 스페인, 이탈리아어 노래까지도 찾아들었었다. 주걸륜도 그런 나의 취미 생활 중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단수이는 그가 나오고 찍은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그가 다니기까지 했던 학교라지 않던가. 특히 그 예쁜 교정과 학교 장면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고 말이다.

 

담강중학교는 참으로 학교가 이국적으로 생겼다. 이국에 있으니 이국인게 맞긴 하지만, 성당 같기도 하고 느낌이 색다르다. 특히 큰 종탑은 영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로맨틱한 느낌마저 준다. 이런 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주말에만 개방하지만 그때는 주중에도 개방했었다. 나야 한창 기분 좋은 환상에 취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은 꽤나 짜증 나긴 했었을 것 같다. 괜스레 미안해진다. 그래도 초록잎이 반짝이고, 학생들이 뛰어다니는 운동장과 새파란 하늘이 보이는 풍경은 지금 생각해도 아련하게 남아 아름다운 추억 한 장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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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아래서 조금만 기다리면 해가 진다, 해가지는 단수이의 마법같은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대만은 7월 추천한다. 한 번쯤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구워져 보자.
오래된 생각도 날아가고, 퀘퀘묵은 스트레스도 타버릴 정도의 태양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끝내주는 노을이 기다린다. 혼자 있고 싶어 혼자 떠나왔는데, 끝내는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석양이.

 

7월의 대만은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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